2stepway 163

어느덧 10주기...

9년전 안산 세월호 합동분양소를 찾았을때 300여명의 애띤 영정사진이 체육관 좌측 끝에서 우측 끝까지 빼곡히 채워진 모습을 바라보면서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일인가?, 슬픔이라는 감정조차 느낄수 없도록 모든 말초 신경계를 태워버릴 듯한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빼곡히 정렬되어 있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면서 그 고통의 존재를 현실에서 뼈저리게 실감할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있고나서 지금까지 나같이 돈없고 빽없는 사림이 세상을 바꿀수는 유일한 방법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한바퀴라도 굴리겠다며 겁없이 덤벼드는 정신나간 인간중에 잘 분별해서 그나마 멀쩡한 누군가에게 힘을 보태는것 말고는 딱히 할수 있는일이 없었다. 그런데 세상 참 거지같이 않바뀌더라 여전히 막말은 넘쳐나고 자식을 키우..

나이드니까 바뀌더라. [덴버 여행기 1]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그때 마다 바뀌는 것들이 있다, 사람을 대하던 방식도 뭔가 내 자존감이 누군가 보다 감정적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전투의식? 같은게 사라지고 힘이 빠지면서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말수도 적어진게 된다, 뭐 굳이 많은 말을 해야할 필요를 못느끼는 이유가 많아지는 거겠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전에는 보지 느끼고 찾지 못했던 아름다움들을 발견하게 되더라, 그리고 정말 위대하고 대단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다시 보니 별거 없음을 발견하게 되면 그 때 뭐 때문에 위축이 들었었나 싶을 정도의 새로운 시선들로 바라보게 된다. 외국계 IT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뭐랄까 어떤 복지 처럼 주어지는 혜택이라면 해외에서 본사 방문이나 트레이닝을 받을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그러니까 회사 돈으로 해..

포기할수 있는 지혜와 자유

누군가 포기하고 싶다고 말할때, 나는 행복할수 있다면 포기하는 것도 지혜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꿈이라는걸 가지고 살지만 막상 그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감당해 낼수없는 버거운 일들이 많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질때 그저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자족(自足)하고 살아갈수 있는것들을 찾아내는 일이 소확행이라면. ​ 그전에 그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스스로 이룰수 없는 꿈이었음을 인정하고 포기할수 있는 자유함을 맛보며 누릴수 있는 행복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더 나은 삶에 대한 정의야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과정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에 그 누구도 적확(的確) 표현할수 없겠으나. ​ 꿈을 위해 인내하며 견디는 것이나 현실을 깨달고 포기하는 것이나 무엇을 선택하든 각자가 정의한 행복의 목적지를 향해 달..

그를 죽인건 우리 모두다..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분별해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을 법이라고 부른다, 윤리와 도덕은 그에 비해서 가치는 높아 보일수 있지만 책임이라는 무게에서 자유로울수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볼수 있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죄를 짓고도 떳떳하게 자신이 옳았다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저질렀던 과오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못내 죽음을 택한다. ​ 시대정신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양심이라는 문제 앞에서 어떻게 저렇게 자유로울수 있을까 해석이 않되는 시대에 산다. 거침없는 욕망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선택한 시대에서는 그로인해 피해보고 상처 받고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은 설자리는 없다.언제나 상처를 증명해야 하는 의무는 고스란히 고통받는 이들의 몫이된다. ​ 마지막 순간까지 억울한 상황을 토로 했다고 한다..

당혹스럽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있던 이스라엘을 대표해 기도할때 그는 야훼 자신을 위해서 이모든 공의와 심판을 이룰것을 기도하고, 다윗은 고난과 탄식 자신을 넘어뜨리려는 악의 현실에서 야훼의 심판과 공의로움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 하지만 야훼는 그런 인간들의 기도에 창조에 원리로 응답하신다, 정의와 윤리 그리고 도덕 법칙에 대한 인간들의 반복적인 물음에 야훼 또한 반복적인 답변은 창조의 원리였다, 이성적인 이해와 믿음을 근거를 바탕으로 받아들이려 해도 신비라고 말하기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열리면서 깨달게 되는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인간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기대에는 결국은 기울어진 인간의 욕망과 의도가 깔릴수 밖에 없다는것이 조금씩 보인다, 완벽을 기대할수 없는 차선의..

예.천.불.지를 외치지 않는다.

대단한 사명이 있거나 부르심이 있어서 시작한 신학 공부는 아니였다, 청년들과 오래 함께 하면서 그들에게 내가 경험했던 신앙의 체험이나 기적을 가지고 건강하고 올바른 신앙인의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기에는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신앙이 그들에게 참된 의미가 될수 있고 분명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기에도 나스스로도 설득력이 부족했기에 선택한 신학 공부였다. ​ 예.천.불.지(예수 천국 불신지옥) 을 외치지 않았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으나 복음이 말하는 신앙은 두려움을 기반을 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격적인 만남과 사랑으로 성령께서는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기에, 누군가를 삶을 향해 당장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지금도 그래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짦은 3년의 신학을 공부하고 ..

B급 일터신앙 11 - 내일을 살아야 할때 !!

누군가 정의해 놓은 내인생의 의미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자 시간 낭비하는 삶이 아니라. .. 하루를 살아도 내인생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며 하루의 삶을 농밀하게 살아갈수 있기를 소망한다. .. 안되는일 붙들고 살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매일을 힘겹게 정신 승리하며 살기보다. .. 되는일 하면서 일상의 삶에 작지만 소망하는 것들이 이루어지는 기쁨이 있음을 누리고 살아가는 내일의 삶이 되기를..

B급 일터신앙 10 - 지식이 말하는건..!!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지키고 챙겨야 하는것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할수 없고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무조건적인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 훌륭하다 말할수 없다, 어쩌면 요구할수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수 있겠다. .. 하지만 지식이 말하고자 하는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하며 자신도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으로 인해서 지금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고 감사할수 있는 태도의 발현은 당연한 지식의 결과라고 믿는다. .. 자신의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타인의 연약함에 아픔을 더하는것이 지식이라면 학교가 가르치는 지식이 더이상 미래가 없음을 말하거나 지식을 받아들이고 대하는 사람의 선택과 태도의 문제이거나, 둘중하나 아닐까?

B급 일터신앙 9 - 아이러니해..!!

원칙은 이상적이나 현실에 너무 멀리 떨어져있고 편법은 현실과 맞닿아 있으나 이상과는 거리가 멀더라.. .. 본능이 이성을 덮어버린 야생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극단적으로 원칙을 외치던 정의로웠던 혈기의 목소리들이 조용해진걸 보니. .. 저들이 손에 쥔것이 무엇이었나를 알게 되더라.. 내가 선택한것들이 정의라고 스스로 자위할때. .. 그것이 누군가의 뒤통수를 깨수부는 짱돌로 쓰기도 하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함부로 말조차 건네지 못하는 비겁한 겸손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 원칙과 편법 그중간 어딘가에 답이 있을것 같기는 한데 나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좀 생기다 보니 중심잡기 위해 안간힘 쓰는 것보다. ...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사는게 차라리 더 쉬울수도 있겠다 싶더라

B급 일터신앙 8 -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떠나다..!

십여년을 넘게 오랬동안 잘해오던 자비량 사역을 왜 그만뒀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많다. .. 물심 양면 지지해주시고 기도해 주셨던 분들의 안타까움이 뭍어나는 근황의 물음이 감사하다. ..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을까 그냥 내가 하는일에 하나님의 임재 하심이라고 할말한게 없으니 내려놓은것 뿐이다. .. 내능력이라고 할것도 없고 내가 하는일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임재가 떠났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일도 아니기에 내려놓음이 아쉬움보다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걸 새롭게 알았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미없는 법궤를 끌고 다니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자신들과 함께 할거라는 근거없는 착각이 불러온 참상을 기억한다면 하나님 부재를 깨달는것도 때로는 은혜다 싶었다. .. 전능자의 부재를 깨달아 하던일을 내려놓고 보니 느껴지는 지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