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없는 목사의이중생활/책상뒤 은밀한 낙서

예.천.불.지를 외치지 않는다.

프르딩딩 2024. 1. 1. 00:30

대단한 사명이 있거나 부르심이 있어서 시작한 신학 공부는 아니였다, 청년들과 오래 함께 하면서 그들에게 내가 경험했던 신앙의 체험이나 기적을 가지고 건강하고 올바른 신앙인의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기에는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신앙이 그들에게 참된 의미가 될수 있고 분명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기에도 나스스로도 설득력이 부족했기에 선택한 신학 공부였다.

예.천.불.지(예수 천국 불신지옥) 을 외치지 않았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으나 복음이 말하는 신앙은 두려움을 기반을 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격적인 만남과 사랑으로 성령께서는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기에, 누군가를 삶을 향해 당장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지금도 그래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짦은 3년의 신학을 공부하고 다시 하던 일을 했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세금을 내면서 직장인으로서 해야되는 일을 했다, 가정에서는 아빠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살고 있다, 육아를 하고 아내를 도와 집안 살림을 한다, 빨래를 하고 설겆이는 하며 매주 월요일 마다 분리수거를 한다, 사람들과 만나서 회식을 할때는 술잔을 채워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에 장단을 맞춘다, 힘들게 갑질하는 고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같이 욕을하고, 서로 간의 오해로 인해서 불편했던 일들은 술잔을 마주하며 털어내기도 한다.

신학을 공부했다는 이유가 나에게는 일상을 뒤로 하고 사명자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결국 신앙을 가지고 살아 간다는 것은 세상안에서 배우고 익히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깨달아 알아가고 성장하게 되는 것은 세상과 부딪치며 배우고 익혔을때 비로소 사는게 은혜의 섭리안에 있음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고, 나는 그것을 성령충만함 이라고 부른다.

 

 

교회로 다시 돌아왔을때도 하던 일을 다시 했던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교회을 돕고 청년들을 섬긴다, 주중에는 직장인으로 주일에는 사역자로 그렇게 세상과 교회를 오가며 일하고 섬기고 있다, 혹자는 투잡이라고 말하는데 사역자는 먹고살기 위해하는 것이 아닌 사명으로 살아가기 위해 사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가끔 사람들이 신기해 한다, 그렇게 해도 되는 거냐고 그런 질문을 받을때마다 나는 되뭍고는 한다 안되는 이유는 뭐냐고, 복음이 말하는 세상은 분별의 대상이지 구별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단순한 사실을 외면했기에 그렇게도 세상과 교회를 갈라놓은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신것은 결국은 창조주가 사랑하는 세상을 위해서 오신거다, 그 사실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지 믿는 자만을 위해서 오셨다는 믿음의 착각을 불러 일으킴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믿었기에 맛보는 은혜와 구원의 기쁨이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그렇지 못함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것 마져도 교만이 될까 두렵다. 그게 내가 전도의 은사가 없는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교역자가 전도를 못하면 마치 큰일나는 것처럼 말해도 어쩌겠나 나에게는 그런 은사는 없는 것을.. 그렇다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강요해서 될일도 아니지 않을까?

사역에 모든것을 올인 해야 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직장을 다니면서 월급을 받고 교회로 부터 재정이 자유롭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백번 옳은 말이다, 나는 작지만 내 가족이 살수 있는 집이 있고, 소소하게 다닐수 있는 차도 있다, 신대원을 다닐때도 교회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가 벌어서 등록금을 감당했고, 학자금 융자를 받지도 않았다. 교회로 부터 재정이 자유로울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직장으로 부터 나오는 월급에 자유롭지 못하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나의 삶의 정황들이 광야를 빗겨 나갔다는 의미로 해석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바램을 가진다는건 들을만 할때 이야기 나눌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