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라는 종교적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면서, 내가 어떻게 할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되면 간절히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음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서 내가 믿고 사랑하는 신에 대해서 대변해야 되는 논리를 찾아야만 했었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신뢰하는 신은 나를 그렇게 버리지 않을거라는 믿음과 신뢰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되는 당연한 일인것 처럼, 갈기 갈기 찢기고 벌어진 상처의 신음을 내뱉는 일보다 어리석게도 믿음의 끊을 놓지 않기 위해서 고통중에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일이 복된 것임을 잊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깨물고 또 깨물었다.
나만 겪는 고통이 아니라고, 인간의 타락으로 시작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이 겪는 보편적인 고통일뿐, 그게 나에게 다가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는 그저 말뿐인 허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더라, 근데 아이러니 하게도 숨막히고 답답한 심정을 이해하고 위로할수 있는 존재가 오직 내가 믿는 하나님이라는 뿐이라는 사실이 선명해 진다, 그래서 이세상에 소망을 둘것이 없다는 말이 조금씩 머리에서 가슴에서 해석되는 시간을 보낸다.
신앙은 기복이 되어서는 않된다고 배웠다, 절대적인 진리는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과 견줄수 없는 것이기에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것으로 진리를 가리워서는 않된다고 배웠다, 오로지 믿음, 구원, 순종만이 성경의 가치를 빛나게 하고 이것이 피조물로 창조된 인간이 이땅에서 보여줘야 하는 것이라 배우고 또 배웠고 때로는 커다란 확성기가 달린 녹음기 마냥 떠들고 다니기도 했었다, 열심히 기도해서 좋은집, 좋은차 그리고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는 간증들이 쏟아질때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그렇게 세속적이고 기복적인 것이 될수 없음을 분노라는 손잡이를 만들어 휘두르고 다녔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만족함을 느끼지 못했기에 삶의 깊은 실상까지 바라보지 못하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했으리라.
광야가 주는 기쁨을 노래하기에는 용기도 부족하고 두려움도 크다, 혈기 왕성했던 시기가 흘러가고 있음을 알게되면서, 두려움이 커지는것은 어쩔수 없더라, 어쨌든 살아가야 한다는 달라지지 않은 현실의 광야를 호기롭게 대면하기 어려운 시기가 나에게도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적절하게 살아갈수 있도록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가족이 지낼수 있는 집, 아이가 다닐수 있는 학교, 그리고 나와 우리 가족이 살아갈수 있는 재정들을 그렇게 주시면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으면 바램은 나도 어쩔수 없는것 같다.40년 광야를 떠돌아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이 부르트지 않았고 신발과 겉옷이 헤어지지 않도록 하신 은혜의 모양새가 조금은 가혹해 보인다.
정해진 정답이 있을것 같아 어쨌든 성경을 뒤적거려 본다, 여전히 정해진 정답은 하나님이더라, 그걸 몰라서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는데 알면서도 의미없이 밑줄 그어진 말씀들에 선을 또 긋고 그어보게 된다, 좀 주셨으면 좋겠다. 때에 따라서 먹이시고 입히시며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걸 안다 그래도 너무 극적이지 않게 주셨으면 좋겠다. 나를 비롯해 우리 모두에게 살아야 되는 기적이 언제 필요할지 뭍는다면 "지금"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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