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있던 이스라엘을 대표해 기도할때 그는 야훼 자신을 위해서 이모든 공의와 심판을 이룰것을 기도하고, 다윗은 고난과 탄식 자신을 넘어뜨리려는 악의 현실에서 야훼의 심판과 공의로움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야훼는 그런 인간들의 기도에 창조에 원리로 응답하신다, 정의와 윤리 그리고 도덕 법칙에 대한 인간들의 반복적인 물음에 야훼 또한 반복적인 답변은 창조의 원리였다, 이성적인 이해와 믿음을 근거를 바탕으로 받아들이려 해도 신비라고 말하기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열리면서 깨달게 되는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인간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기대에는 결국은 기울어진 인간의 욕망과 의도가 깔릴수 밖에 없다는것이 조금씩 보인다, 완벽을 기대할수 없는 차선의 선택에 불과한 인간의 공의나 정의를 이루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은 결국 더 나빠지거나 덧나지 않게 하기 위한 항상제 처방일 뿐 근본적인 회복을 기대할수 없는 한계를 느끼게 하는 요즘이다.
성경의 모든 저자들은 결국은 회복적 종말에 대한 상상력으로 버텨왔다 그러한 신앙의 중심이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중심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이라 믿는다 하지만 야훼의 심판과 공의는 아직 세상에 펼쳐지지 않았다,그게 언제 일지 아무도 모른다.
악은 거침없이 자기길을 가는데 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며 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이제 선이 악을 이길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의심마저 들게한다. 계시록에 나오는 이기는자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유지해야 하는 곤혹이 어쩌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광야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샌프란 시스코 금문교를 건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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