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없이끄적끄적!!!/2. 가벼운낙서질

일상의 끄적거림 80 - 종교가 해야할일

프르딩딩 2020. 3. 19. 22:36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뭔가 명확한 답을 찾기 위해 종교라는 신비(?)한 수단을 찾는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때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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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도 예측할수 없는 삶의 모호성이 주는 불안감을 전지전능한 존재로 부터 명확한 답을 얻어 인생여정의
불안함을 해소하고 싶은 선택적 수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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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간의 삶이라는게 정해진 수학공식 처럼 답이 딱떨어지는 여정이 있을까? 아니 그럴수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지옥이라면 매일 예측할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는 증거는 여기저기에 널려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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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옮고 그름을 논쟁하지 않아도 신앙이 있는이나 없는이나 모두 예측할수 없는 두려움을 떠안고 살고 있는건

크게 다르지 않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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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성경을 뒤져봐도 하나님께 쓰임받은 인물중에 드라마틱하게 삶이 변화되었다는 이야기는 찾아볼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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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장똘맹이처럼 굴러먹다가 부르심 받아 사명의 도구로 사용되었을뿐 누구하나 극적인 삶의 변화가 주는
해피엔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현실을 살다가 생을 마친다는게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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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내눈에 비춰지는 성경은 하나님은 누군가의 기도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셨던 경우가 극히 드문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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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이는 자신은 기도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즉각 들으며 계시를 받는다 하는데 그런 소리 들을 때마나 나는 왜 작두타는 무당으로 보이기만 하는지 믿음이 작은자라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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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될때까지 기도하셨던 예수님 마저도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의 잔을 거두어 질수 있다면
피할수 있다면 그렇게 되길 원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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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는 자신이 감당해야할 사명 이전에 당장의 현실에서 다가오는 삶의 모호성이 주는 두려움을 우선 직시하는 것부터 출발하셨으니 예수님이 사셨던 현실의 삶의 한자락을 통해서 지금 내가 취해야할 삶의 태도와 가치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밑그림을 다시 수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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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할수 없는 모호한 질문지에 답을 채워 넣어야 한다면 조급하고 무리하게 정답인것 처럼 내어놓는 극약 처방으로
당장의 플라시보 효과로 자위하는 삶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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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걸린다 해도 삶의 모호함의 여백을 해답의 스토리로 꼼꼼하게 채워질수 있도록 조급함을 내려놓고 깨달음이 명확해질수 있도록 누군가와 함께 길을 걸으며 돕는것이 종교가 해야될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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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면 극약 처방이 난무하는 종교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